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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미타 | 파라미타청소년연합회 창립 20주년 기획 <상>어떻게 만들어졌나(불교신문 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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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작성일16-12-06 17:54 조회2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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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5월12일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파라미타 발대식 모습.

종단의 청소년육성단체인 사단법인 파라미타청소년연합회(회장 심산스님, 이하 파라미타)는 오는 20일 오후2시30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내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창립 20주년 기념법회를 봉행한다. 1996년 5월12일 발족한 파라미타는 20년간 전통문화교육 문화재 지키기 해외봉사 활동들을 전개하며 청소년포교의 중심으로 자리했다. 본지는 파라미타가 걸어온 길과 주요 성과 그리고 향후 과제를 주제로 3회에 걸쳐 기획기사를 싣는다.

1994년 종단개혁이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주된 이유는 종단의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사회화’를 모토로 내건 개혁종단은 실질적인 중생구제에 나서며 ‘산중불교’ ‘기복불교’ ‘은둔불교’라는 기존의 이미지를 씻어갔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과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나눔의 집’이 그래서 생겨났다. 파라미타 역시 자성과 쇄신의 산물이다. 특히 1990년대 후반은 종단 신도등록을 기점으로 전국포교사단과 중앙신도회, 교사 및 공무원불자회 창립 등 ‘신도 조직화’의 물결이 거세게 일어나던 시점이다. 단순히 불교를 믿는 것을 넘어, 불교를 지키고 불교를 위해 일할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청소년 역시 불교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챙겨야 할 계층이었다. 종단개혁으로 별원하고 승격한 조계종 포교원은 1995년 ‘한국불교 중흥 제1차 5개 년 포교사업계획’을 수립하면서 1차년도인 1996년은 ‘불교 청소년의 해’로 지정했다. 청소년을 중시하게 된 데에는 사회적인 요인도 작용했다. 당시는 통합적 교육을 기조로 하던 국가의 5차 교육과정(1987~94년)이 특별활동을 중시하는 6차 교육과정(1994~2000년)으로 개편되던 시기였다.

교육과정이 변화하리란 정보를 일찍부터 입수한 개신교는 학교특별활동에 초점을 맞춘 단체 설립과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적극적으로 10대들의 교실을 파고들었다. 교법사를 포함한 청소년지도자들이 염두에 두던 모델은 YMCA였다.

1995년 6월 전국교법사단 정례발표회에서 종단 차원의 청소년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최초로 제기됐다. 조계사 불광사 능인선원 대원정사 등 몇몇 개별사찰이 자체적인 청소년 포교프로그램을 운영하던 때다. 유기성도 통일성도 부족했다.

결정적으로 사실상 붕괴되다시피 한 일선 학교의 불교학생회 현실에 아연실색했다. 전국교법사단 관계자에 따르면 1995년 겨울 교법사단이 현황을 조사한 결과 불교학생회 활동이 예상보다 훨씬 저조했다. 특히 중학교의 경우엔 불교학생회가 있는 학교가 전국 학교에서 1%라는 사실에 놀랐다. 불교신문은 파라미타 발대식을 보도하면서 사설에 “파라미타의 추진배경에는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청소년불자 계층의 왜소화’ 현상에 대한 불교계의 근원적 위기감이 근원적으로 깔려 있다”고 실었다.

학교현장의 걱정을 듣고 종단 집행부가 부지런히 움직였다. 포교원은 1995년 8월28일 ‘청소년포교 종책의 당면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전국 규모의 청소년단체 창립’ ‘청소년 문화사업 전개’ ‘청소년 포교자료와 프로그램 개발’이란 3대 과제를 도출했다. ‘불교 청소년의 해’ 기획위원회도 꾸려 파라미타 창립을 주도할 인력도 준비했다. 그해 12월 교계 청소년지도자 320명이 참가한 가운데 한국불교 청소년 지도자대회도 성황리에 개최했다.

분위기는 완연히 무르익었으나 어려움도 있었다. 당초엔 기존의 불교계 전국단체였던 청소년교화연합회와의 통합을 시도했다. 그러나 운영 주도권을 둘러싼 의견차로 통합 논의가 무산되자 일순 공중에 뜨고 말았다. 야심차게 준비하던 최초의 청소년 공모전도 예산부족으로 유야무야됐다. 파라미타 초대 사무국장을 지낸 우인보 영석고 교법사는 “전기도 끊어진 사무실에서 교법사와 포교원 임시 직원들이 외롭게 창립을 준비했다”며 “재가불자들의 고생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1996년 5월12일 파라미타 발대식 및 서울지부 출범식 기념 제1회 파라미타 청소년문화대축제가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렸다. 초대 총재에는 포교원장이었던 성타스님이, 회장에는 조계사 주지 현근스님이 취임했다. 단체의 이름은 서울 불광사 청소년법회 ‘파라미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명했다. ‘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뜻이다. 동시에 대승불교의 6바라밀을 생활덕목으로 설정해 불교적 가치관을 근간으로 한 인성 함양을 꾀했다.

서울지부 외에 불도(佛都)인 부산지부도 곧이어 자리를 잡았다. 9월에는 문화체육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다. 종단이 공인하는 명실상부한 청소년단체가 세상에 나오던 순간이다. 창립 첫해 여름 전남 무주에서 열린 전국연합캠프에는 3000여 명의 청소년과 지도자가 참석했다. 이는 종단 차원 최초의 청소년 행사로 기록된다. 20년이 흐른 오늘날 552개 분회, 교사와 학생 포함 5만 여명 회원 규모를 만들어낸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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